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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일, 18년 전의 무언가를 기념하며.



이상 징후



 불확실하고 몽환적인 기억. 눈을 감고 시간을 되돌아가다 보면, 형상은 흐려지고, 이 시간 속에 존재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어느 때에 운이 좋아서 이렇게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겪은 위기들이 뚝뚝 끊어진 프레임으로 움직인다. 그런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 오늘이 중요한 날이라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가끔 그런 형상이, 내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닌 누군가가 경험한 장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 때면, 어쩌면 지금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나의 기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어, 그 말 속에 ‘나’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경계에 있는 의미일 것이다. 정말 그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에서 도대체 얼마나 달라진 채로 있을까.

 “다이스케, 어제 새벽까지 깨어있었는데 졸리지 않아?” 열린 가방 지퍼 사이로 치비몬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 많이 바뀌긴 하겠네. 아주 많이.


 휴가를 보내는 철이 되면 시간관념이 갑자기 사라졌다. 오늘이 평일이던가. 저번에는 8월 1일은 주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껏 1일이 어떤 요일인지 달력을 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지금까지는 기적에 가까운 일로 모두 만날 수 있었으니. 그날만큼은 주말 같았다. 세상은 평소와 같이 돌아가고 있어도, 마치 몇몇 사람들에게만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경험을 안겨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모리얼, 그 단어를 뉴욕에서, 수 년 전 테러가 일어났던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한 달 뒤엔 그 날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도하는 이야기가 다시 나올 것이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 그 현장으로 달려가 잔해를 치우던 사람들, 그 옆에 있는 디지몬들. 나의 기억은 아니지만 미미 상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그 장면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았음에도.

 “비행기 타려면 많이 남지 않았어? 뭐 할 거야?”

 “그러게, 갈 날이다 생각만 하고 그냥 막 나온 거라서. 시간이...... 아직은 오전이니까.”

 “졸려... 근데 나는 왜 가방에 있지?”

 “가방 안에서 자고 있어서 그냥 들고 나왔지. 나올래?”

 “응, 여기나 밖이나 덥기는 하지만...”

 반쯤 열린 지퍼를 열자 치비몬이 튀어나와 어깨에 매달렸다. 가방을 뒤지다, 언젠가 사놓고 까먹고 있었던 초콜릿 바 하나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샀던 좀 큰 사이즈의 초콜릿이었다.

 “이걸 언제 샀더라. 좀만 있으면 다 녹아버릴 거야.”

 “그럼 그 전에 먹으면 되지!”

 치비몬은 포장을 뜯자마자 손에서 가져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어제 많이 먹지 않더니, 가뜩이나 좋아하는 걸 보았으니, 그것 외에 신경 쓸 게 없을 게 분명했다. 남김없이 헤치워버리고 남은 포장지를 돌돌 뭉쳐서, 주위를 보다가 그냥 가방에 넣었다. 입에 묻은 게 아까운 듯 최대한 혀를 내밀고 있는 치비몬의 입가를 닦다가, 치비몬이 말했다.

 “다이스케, 바다나 볼래?”

 “바다라니...... 언제라도 볼 수 있는 게 바다인데.” “그래도. 도쿄하고는 많이 다르니까. 여기 올 때마다 그게 정말 좋아.”

 “그래, 그러자.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까.” 하품이 크게 나왔다. 예정대로라면 도쿄에는 오후에나 도착할 테고, 피곤한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될 참이었다. 손으로 얼굴을 때리고, 어차피 비행기에서 자면 될 거라 생각한다. 바람이라도 맞다 보면 잠이라도 깨려나.

 

 

 “바람 좋다. 안 그래, 다이스케?”

 치비몬의 말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받은 문자에 놀라 황급히 공항에 연락을 하는 중이었다. 비행기가 지연이 된다는 연락이었다. 아니, 결항이었던가. 도쿄로 가는 항공편만 그런 건 아니라고 처음부터 대뜸 들었다. 지금 예정된 거의 모든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다라.

 “그러면 대체편이 어떤 게...... 네, 그래도 오늘 밤 출발이라고요......”

 “다이스케, 어떤 일이야?”

 “하, 결항이라는데, 갑자기 어떻게 된지 모르겠어.”

 7월 31일, 오후로 넘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은 막 1일로 넘어가는 때. 이런 상황이라면 8월 1일 전까지는 도착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예정을 빡빡하게 잡은 탓일까.

 “일단은... 다들 연락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게, 올해는 비행기가 이러다니......”

 “8월 1일만 되면 하나씩 이상하지 않아? 저번에도 몇시간 지각했잖아.”

 “올해는 제대로 올 거라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그나저나 어디 머물 곳은 있어?”

 “하... 또 신세지기는 그런데.”

 예정되었던 숙소가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하루 정도를 숙소 없이 지낼 뻔했다. 마침 월리스를 만났을 때, 여차저차 말을 해서 겨우 하룻밤을 집에서 보냈다. 급하게 한 부탁에 마음이 조금은 이상했는지 어제는 별로 자지 못했다. 전화를 걸어 연결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조금 들었다.

연락이 닿았고, 홀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사이로 월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이스케? 뭐 놓고 온 거라도 있어? 오늘 급하게 나가던데.”

 “미안하지만, 몇 시간만 더 있어도 될까?”

 “뭐, 괜찮기는 하지만, 왜?”

 “실은, 비행기가...... 아, 가서 해도 될까.”

 “응, 아. 근데 여기 네 게 있는 거 같은데, 디터미널인가?”

 “그런가 보네. 어차피 가야했던 거구나.”

 “천천히, 천천히. 뭐든지 급하면 안 된다니까?” 전화기 너머 구미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누가 그런데? 소리치자 작게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치비몬, 가끔은 기분 나쁘지 않아?”

 “하나도 안 그런데?” 치비몬이 말했다

 “휴, 물어본 내가 바보지.” 오늘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세기 어려웠다.

 

 

 

 “10시간이나 지연이면 좀 심각하긴 하네.”

 “갑자기 이러다니. 다른 항공편도 없을 줄은 몰랐어.”

 “이맘때면 하나씩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아. 아, 뉴스에도 나오네.”

 미국 동부에 있는 공항에 전부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서부나, 다른 나라 공항에는 이상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작년에 있던 일이 생각났다. 도로 신호가 완벽하게 엉망이 되어, 발로 구와 구 사이를 뛰어갔지만 모임에 1시간을 지각했었다. 그 전에도, 지나가는 뉴스에서 어디 중 하나 꼭 하나씩 발생하는 이상 징후를 본 적이 있었다.

 “저번에는 TV가 아예 먹통이었어. 이것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라디오도 안 되고, 방송이 아예 먹통이었다고 했어.”

 구미몬이 컵에 있는 얼음을 꺼내먹으며 말했다. 일본보다는 덜하겠지만, 뉴욕도 무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변덕스러운 날씨라고는 하지만, 오늘만큼은 계절감을 되찾은 듯 뜨거운 날씨였다.

 “덥네. 도쿄도 이렇게 더울 텐데.”

 “얼음 먹을래?” 구미몬이 얼음을 손에 들고 말했다.

 “됐어, 물은 많이 먹었으니까.”

 “구미몬에게 너무 그러지 마. 놀리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월리스. 어제도 구미몬 때문에 좀 힘들었다고.”

 “예전엔 별 말 없었는데. 그냥 타입이 안 맞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멍하게 TV에 나오는 화면에 눈을 집중하고 있다가, 어깨에 있는 치비몬이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근데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해야하지 않아?”

 “거기는 지금 새벽이라서, 전화 같은 건 하면 안 될 거야.”

 “그럼, 문자나 메일로 하면 되잖아.”

 “어떻게 써야 제대로 받아들여지려나......”

막상 누군가에게 보낼 지도, 어떻게 보내야할 지도 막막했다. 늦은 시간에 깨어있을 사람이 몇 생각이 났지만, 그래도 무언가 막막했다.

 “간단하게 보내면 될까. 비행기 때문에, 못 온다고.”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좀 생각해도 될 것 같아.” 월리스가 말했다. 방 안에는 몇 있지도 않았지만, 금방 어울리는 치비몬과 구미몬 때문에 어느 사람들로 분주한 공간만큼 분주했다.

 “이런 날씨에도 쌩쌩하구나.”

 “우리도 어렸을 때 그랬잖아. 무턱대고 중부까지 가기도 했고.”

 “아직도 기억나. 아, 그 알은 잘 있어?”

 “저기 있어. 아직 그대로라서 걱정이네.” 책상 한쪽에 놓여있는 알이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 반점이 있는 누런 알. 떠내려가는 강에서 꺼냈다는 그 알은, 그 이후로 좀처럼 미동도 없었다고 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초코몬이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지만, 확신이 찬 말은 아니었다.

 “가끔은, 오늘 나타나는 이상 현상이 저 알에 나타났으면 좋겠어.” 월리스의 말이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놀고 있는 치비몬과 구미몬을 보다가, 월리스가 다시 말했다.

 “8월 1일에는 다들 모이는 거야?”

 “응, 사실 그날은 그렇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날은 선배들이랑 친구들이 디지털 월드로 간 날이니까.”  “구미몬과 초코몬이 만난 때가 언제였더라. 너무 어렸을 때라 날짜는 기억나지 않아.”

 타이치 선배와 히카리 짱이 코로몬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때였을 것이다. 그때는 선택받은 아이들도 무엇도 없었고, 그 이후에야 하나둘씩 선택을 받았다고 했다. 그 날의 이상한 이야기가 오늘 일어나는 이상 현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곳에서 일어난 디지몬의 출현이 99년도에도 이어진 것이라고. 그렇다면 월리스는 99년도에 어땠을지, 다른 곳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99년도, 오늘은 어땠어?” 나는 물었다.

 “추웠어. 겨울보다 더 추운 날씨라서, 일어나자마자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 그 바람에 집에만 누워있었어.”

 “며칠이나 누워 있었어. 월리스 이마가 그렇게 뜨거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구미몬이 말했다.

 “도쿄에서는 눈이 내렸어. 그때 눈이 온다고 밖에 나가서 구경하고 그랬었는데, 그 다음날인가 이튿날인가는 빅사이트에 가족들이랑 갇혀있었어.”

 8월 1일, 그 날 자체는 그렇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들은 또렷히 기억이 났다. 괴물의 습격, 그때는 이름을 모르던 공룡 위에 있던 사람......

 “그때 처음 봤던 거 같아. 내 우상을? 지금까지도 믿고 있는.”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마음이 쿵쿵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8월 3일 이후의, 나를 본 적이 있었다. 고글을 가지고, 타이치 선배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도 무언가 잊어버릴 때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그 어리고 힘차던 목소리를.

 그 사이 하품이 나왔고 눈이 점점 감겨왔다. 금방 피로가 다시 쌓인 건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월리스는 방 쪽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자. 시간은 아직 남았으니까.”

 “비행기에서 잘 텐데. 그냥 있을게.”

 나는 월리스의 방에 들어가 앉았다. 곧 월리스는 방에서 나갔고, 그 뒤를 이어 구미몬의 목소리가 뒤따라왔다. 둘의 이야기가 어렴풋이 들렸고, 옆에서 언젠가부터 자고 있는 치비몬을 쓰다듬다가, 어느새 침대에 누워 그 옆에서 쌓인 피로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2017/11/08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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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강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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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이 다 돼가도록, 이 도시의 길이 걸어도 끝이 없을 거라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노래에서 항상 나오는 ‘처음 가보는 거리’라는 구절을 되내이면서, 익숙한 거리를 걸어도 왠지 길을 잃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어쩌면 이 도시라는 게 자신의 앞에, 주위에, 공기처럼 둘러쌓여 있었음에도, 바라보는 눈 앞에서 멀리 멀리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생각을 버리고 가벼워진 기운을 오랜만에 가지자, 그 덜어낸 무게만큼 바르게 어딘가로 휩쓸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변화는 느낄 수 있을만큼 그 속도로,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이 거대한 컨테이너처럼 변한 것 같았다. 누구든지 가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레일. 전속력으로 뛰어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봄은 느리게 시작되었다. 4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로 낢씨가 변덕스럽기는 했지만 시기상으로는 어쨌든 그러했다. 어딘가에서는 막 피어나는 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자리에는 많은 곤충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비, 벌, 그밖에 이름 모를 곤충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꽃들. 움츠러든 겨울이 녹고 다시금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는 때가 한발자국 다가왔다.
 늦여름의 기억이 어느 것보다 크게 다가오지만, 막 봄으로 접어들던 봄방학의 일들도 이맘때면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디아블로몬 때문에 벌어진 소동들. 집 안에서, 아니면 오다이바를 뛰어다니며 벌인, 어떻게 보면 전쟁 게임 같이 느꼈던 사건들도 어떻게 보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시작을 거창하게 벌이는 것은 이제는 진저리가 나지만, 이전의 사건이 일단락되고 처음 맡는 봄은, 그 어느때보다도 따뜻한 날로 느껴졌다.
오다이바의 옛날 풍경들, 처음 발을 디뎠던 디지털 월드를 생각할 때가 있다. 추억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몸에 밴 습관처럼, 흔적을 더듬는 것 같은 느낌이였다. 수년 전 파괴되었던 그 자리가 눈에 갑자기 어른거릴 때도 있었다. 생각하기 싫었지만 굳이 그 형상을 떨쳐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흔적을 뒤덮고 있던 건 디지털 월드를 날아다니는 빛나는 나비들이었다. 수년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사라졌을 줄 알았지만, 그것들은 어디에서나 하늘을 날아다녔다. 이상하게도 나비들이 나무에 붙어있거나, 어딘가에서 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떨어지는 일 없이 모여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미국에서 언젠가 수많은 나비떼를 본 적이 있다. 그 나비들은 멕시코로 날아갔다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자기들이 살던 캐나다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그 먼 거리를 왕복할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 아니였다. 돌아오는 중간에, 그 나비들은 알을 낳고 죽고, 그 태어난 나비들이 다시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때쯤이면, 돌아온 나비는 처음 떠난 나비의 고손 정도 된다고 한다.
 처음으로 떠난 여행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아주 작은 여행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사람들은 아주 길고 먼 여행을 떠나야할 지도 모른다. 해가 갈수록 거대한 수로 불어나고,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여행에 동행할 것이다. 거대한 목표를 사람들이 이루어야 한다면, 아마 나의 세대에서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끊임없이 여행길의 기억들을, 살아온 증표들을 물려주면서, 수십년이 흘러 처음에 있던 곳으로 새로운 세대가 돌아올 때쯤이면 이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 나비들은 특별하게 방향을 가리키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저 몸 속에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도 결국은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날아가는 나비떼에 섞여 날아가다가, 언젠가는 새롭게 떠나는 나비들에게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안녕 안녕 나비들아. 우리가 가던 길을 다시 가 줘, 하면서.



 와다 코지和田光司님을 기리며. 2017년 4월 3일, 1년 째가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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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강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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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상영회 때 드리려다가 어쩌다보니 드리지 못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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