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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이 다 돼가도록, 이 도시의 길이 걸어도 끝이 없을 거라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노래에서 항상 나오는 ‘처음 가보는 거리’라는 구절을 되내이면서, 익숙한 거리를 걸어도 왠지 길을 잃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어쩌면 이 도시라는 게 자신의 앞에, 주위에, 공기처럼 둘러쌓여 있었음에도, 바라보는 눈 앞에서 멀리 멀리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생각을 버리고 가벼워진 기운을 오랜만에 가지자, 그 덜어낸 무게만큼 바르게 어딘가로 휩쓸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변화는 느낄 수 있을만큼 그 속도로,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이 거대한 컨테이너처럼 변한 것 같았다. 누구든지 가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레일. 전속력으로 뛰어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봄은 느리게 시작되었다. 4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로 낢씨가 변덕스럽기는 했지만 시기상으로는 어쨌든 그러했다. 어딘가에서는 막 피어나는 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자리에는 많은 곤충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비, 벌, 그밖에 이름 모를 곤충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꽃들. 움츠러든 겨울이 녹고 다시금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는 때가 한발자국 다가왔다.
 늦여름의 기억이 어느 것보다 크게 다가오지만, 막 봄으로 접어들던 봄방학의 일들도 이맘때면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디아블로몬 때문에 벌어진 소동들. 집 안에서, 아니면 오다이바를 뛰어다니며 벌인, 어떻게 보면 전쟁 게임 같이 느꼈던 사건들도 어떻게 보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시작을 거창하게 벌이는 것은 이제는 진저리가 나지만, 이전의 사건이 일단락되고 처음 맡는 봄은, 그 어느때보다도 따뜻한 날로 느껴졌다.
오다이바의 옛날 풍경들, 처음 발을 디뎠던 디지털 월드를 생각할 때가 있다. 추억 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몸에 밴 습관처럼, 흔적을 더듬는 것 같은 느낌이였다. 수년 전 파괴되었던 그 자리가 눈에 갑자기 어른거릴 때도 있었다. 생각하기 싫었지만 굳이 그 형상을 떨쳐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흔적을 뒤덮고 있던 건 디지털 월드를 날아다니는 빛나는 나비들이었다. 수년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사라졌을 줄 알았지만, 그것들은 어디에서나 하늘을 날아다녔다. 이상하게도 나비들이 나무에 붙어있거나, 어딘가에서 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떨어지는 일 없이 모여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미국에서 언젠가 수많은 나비떼를 본 적이 있다. 그 나비들은 멕시코로 날아갔다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자기들이 살던 캐나다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그 먼 거리를 왕복할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 아니였다. 돌아오는 중간에, 그 나비들은 알을 낳고 죽고, 그 태어난 나비들이 다시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때쯤이면, 돌아온 나비는 처음 떠난 나비의 고손 정도 된다고 한다.
 처음으로 떠난 여행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아주 작은 여행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사람들은 아주 길고 먼 여행을 떠나야할 지도 모른다. 해가 갈수록 거대한 수로 불어나고,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여행에 동행할 것이다. 거대한 목표를 사람들이 이루어야 한다면, 아마 나의 세대에서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끊임없이 여행길의 기억들을, 살아온 증표들을 물려주면서, 수십년이 흘러 처음에 있던 곳으로 새로운 세대가 돌아올 때쯤이면 이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 나비들은 특별하게 방향을 가리키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저 몸 속에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도 결국은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날아가는 나비떼에 섞여 날아가다가, 언젠가는 새롭게 떠나는 나비들에게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안녕 안녕 나비들아. 우리가 가던 길을 다시 가 줘, 하면서.



 와다 코지和田光司님을 기리며. 2017년 4월 3일, 1년 째가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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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강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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